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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18 화려한 휴가와 자본주의 by DrunkenSTAR
나는 학번으로는 구공학번이니까, 끼인 세대다. 정치적으로 구분된 386도 아니고 신세대, 엑스세대도 아니면서 베이비부버의 정상을 향한 독주 세대여서 100만명 가까운 동기들과 학력고사를 봤었던 걸로 기억한다. 세대 규모는 큰데 딱히 진지하지도 못했고, 반항적이지도 못한 주변 세대라는 점 때문에 다른 세대의 관점으로, 대게는 편의상 이쪽 저쪽으로 편입 시켜주는 세대다. 386세대의 운동적 역사에 대해 끼일라 치면, 넌 겪어보지도 않고, 라며 핀잔이 돌아오고 미시적인 사회개혁(소수자, 양극화, 인권, 양심, 평화 같은 것)에 눈길을 돌리면 그다지 활동적이지 못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버린다.

특히, 5.18광주민주화항쟁 같은 사안이 그렇다. 나이로 비추어 보아 이성 또는 지적 지각 상태에서 그와 같은 역사적 사안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전제가 있는데다가 그것을 겪었던 선배들과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루어 질 수 없는 담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게의 선배들, 자본주의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에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에 대해 밝은 선배들은 광주민주화항쟁 같은 사안에 관심이 없다는 것도 알았다. 이미 예상한, 그래서 크게 놀랄 일도 아니지만 이러한 사안들 또는 현안들(소수자, 양극화, 인권, 양심, 평화 같은 것)에 있어서 그들이 취하는 스탠스는 대게가 좋고, 좋지 않음으로 판단 된다. 자본주의에 좋지 않은 것을 너는 왜 그런 걸 모르냐 듯 짐짓 안타까워하는 선배들을 보면 때때로 기가 막힌다.

좋고 좋지 않음으로 세상을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논리는 자본주의다. 이런 사람들의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제대로 작동케 하는 민주주의 일 때 이해 가능하다는 논리이다. 물론, 그런 논리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돈 잘 벌게 해주면 된다, 그러면 좋고 아니면 좋지 않다, 는 이들에게 명확하다. 스스로 치열하게 돈 잘 버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후배들을 말릴 논리가 바르게 작동할 수 없는 이유도 이 좋고 좋지 않음 이라는 취미 폭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버는 것, 특히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버는 것을 미덕으로만 인식하다보니 스스로 모든 잉여를 생산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말이다. 1인의 노동으로 오늘날 생산할 수 있는 잉여는 제한되어 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노동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자본 역학, 금융의 흐름, 타인의 잉여 가치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오로지 1인 노동의 결과로만 볼 수 없다. 따라서 돈을 많이 버는 행위는 치열해서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즉 관계적으로 돈을 버는 체제에 있으므로 과정의 옮고 옮지 않음과 소비의 책임이 따라야 하는 반성은 당연한 미덕이어야 한다.  

5.18 민주화항쟁이나 운동적 사회개혁 현안은 절대로 좋은, 좋지 않음 따위로 판단해선 안된다. 물론, 소수자 보호, 평화 구축, 양심 선언을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 많다. 하지만, 좋은 것은 신념이나 사상이 아니고 취미로 그치는 일시적인 연민의 상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에 실은 위험하다. 즉, 5.18 광주민주화항쟁은 좋은 일이다, 또는 옮은 일이다, 라고 판단하는 차이의 엄격한 지점이 존재한다. 우리는 좋은 일은 언제든지 할 수 있어도 옮은 일은 좀처럼 하기 힘들다. 좋은 일은 굳이 내가 스스로 판단하지 않아도 대중과 트랜드의 판단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지난 역사를 옮은 일과 옮지 않은 일로 평가하는 행위는 쉽다. 사회와 그 사회를 움직이는 인간의 역사는 변화무쌍하다. 그 사회가 만들어 내는 역사를 올바르게 판단하는 일은 진실에 되도록 가깝게 접근하는 일이다. 이것은 제도와 체제의 관점만으로 이끌어 낼 수 없는 일이다. 즉, 자본주의 사회이니 자본주의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해낼 수 있는 관점은 고작해야 좋은, 좋지 않은 정도 이기 때문이다.

광주민주화항쟁을 옮은 일이었다고 판단하는 것 만으로 관점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광주는 일개 지명과 풍경만으로 그치기 일쑤다. 나와 같이 당시에 이성이 개입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에게 있어서 책과 간접 경험만으로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역사적 사안을 이해하는 것은 여행을 하는 것과 같다. 여행지에서 그저 좋은 풍광과 색다른 문화적 경험에 반해 셔터를 누르는데 정신이 팔리는 '좋은 것'을 위한 행위만으로는 그 고장의 참모습을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그곳에 대해 겸허하고 진지한 개입을 해내지 못한다면 그곳이 역사적으로 해냈던 진실, 지금 그 순간에도 끊임 없이 만들어 내는 진실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다.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렇다. 겸허해지는 것 이다. 조금 안다고, 조금 읽었다고 까불지 않는 것이다.

누구나 사회에 불만이 있다고 해도 사회를 제도적으로 비판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사회에 피판적이라고 해도 체제가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욱 적다. 나는 아직 공부도 덜 됐고 용기도 많지 않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이 사회의 부조리를 까발리고 체제가 왜 바뀌어야 하는지 용기 있기 말하고 실천하는 사람을 보면 나는 경외롭다. 게다가 사회 개혁적 현안(소수자, 양극화, 인권, 양심, 평화 같은 것)을 토대로 한 오늘날의 진보운동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매우 용기 있는 논쟁이라 생각한다. 근본적 진보건 계량적 진보건 나는 그런 노선에 대해 어느 줄에 서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노선의 갈등과 토론에 참여 할 만한 됨됨이도 못되는데다가 체제와 사상의 이율배반에도 아직 논리적으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체제 중심적인 선배들이 사회를 비판할 때는 고작해야 부동산 시세가 떨어 지거나 주식 투자가 잘 되지 않았을 때이다. 못마땅하니 국회 앞에 가서 피켓이라도 들어야 겠네, 그럼 바뀌냐? 는 사람들의 조롱 따위는 1초도 머리에 머물지도 않는다. 체제를 바꾸자는 것이나 체제 안에서 사회 개혁적 현안을 논의하자는 의견이 구분되지 않는 사람들은 이를 싸잡아 친북좌파 쯤으로 규정하고 만다. 부동산과 주식에 매몰된 신체는 광주민주화항쟁을 그저 역사가 옮은 것이라 규정했으니 그렇다고 건성으로 말한다. 하지만, 광주민주화항쟁의 역사가 민주화에 어떤 역할을 했고 이에 연장한 계급적 담론에 이르게 되면 바로 태도를 바꾼다. 그 태도는 친북좌파에 대한 반공적 경계심이다.

역사적 해석이 불가능한 이러한 부류들에게 '좌파는 공산주의' 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내가 번 돈을 게으른 자들(자본주의 방식을 이기지 못한,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에게 뺐기지나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좌파는 공산주의라는 등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물론이 실은 좌파에서 나왔다는 친절한 설명은 들어 먹히지 않는 진실에 가깝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적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자본주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으며 우리의 자본을 빼았으려 하는 사람은 모두 공산주의자라는 전근대적이며 구린 사상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해하는 것은 자본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을 굴리는 방법을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옮은 것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판단하면 그만이다. 왜냐, 돈이 많은 상태가 선한 상태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으로 공산주의를 일깨울 때도 인간의 노동만으로 잉여 가치가 생산되지 않는 시기 였고 바로 그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민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노동 가치가, 나의 노동 임금이 오로지 나만의 노동으로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는 문제적 지점을 간과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가치로서의 자본주의와 사회 매카니즘으로서의 민주주의가 나의 자세와 태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생각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 올바른 생각이다. 불행이도 이런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모두 사회를 바뀌기 위해 활동가나 운동가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역사에 바른 태도로 진지한 개입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이러한 사람들을 존경할 줄은 알아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를 참칭하고 있더라도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최소한 인간이 가져야 할 이성과 존중의 교양이 있다면 그 비판이나 자유의 태제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 역사적 행위 앞에 취해야 하는 태도가 어떠한 것인지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진보 또는 진보운동을 현실적이지 않은 관념주의로 매도함으로서 현 체제 안에서 안락할 수 있다는 패배주의적 사실을 빨리 인식할 수록 좋다고 가르치는 선배가 많은 현실이 안타깝다.

나는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해 잘 모른다. 광주가 여전히 나에겐 여행지에서 한발짝도 전진하지 못한 내 무지의 탓이리라. 그곳이 다른 곳보다 특별나게 진보적이거나 진지한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당시에 그곳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으로 돌아 왔는지는 꼭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왜 죽었을까가 아닌 그렇게 죽을 수 있었을까, 죽을 것을 알면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품위와 양심을 위해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을까, 지금은 역사적으로 평가를 받았지만, 죽어서도 친북좌파나 빨갱이로 남을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 지켜야할 것을 알고 목숨을 거부할 수 있었을까. 광주의 정신을 나 따위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냐만, 그들의 목소리가 악랄한 군사정권에 대항한 진지한 사람들의 특별한 목소리로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광주에서 끝까지 저항한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도 아니고 역시 폭도도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진지한 사람들이라는 엘리트들은 진정한 해방구를 만들어 낸 적이 없다. 광주에서도 진정한 해방구를 만들어 낸 얼마간의 시간과 목숨을 바꾼 용기 있는 진동은 평범한 사람들이 해낸 위대한 일이다.

자유주의 안에서 반공주의자들의 목소리나 자본주의에 살면서 사회주의적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특별하다. 하지만, 우리가 들어야 할 목소리는 이런 특별한 목소리가 아니다. 우리가 들어야 할 목소리는 고도로 발달 됐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먹고는 살고 있겠거니, 애써 외면했던 평범한 이웃들의 신음소리다. 광주의 정신은 평범한 사람들도 총을 들고 목숨을 지척 간두에 놓아야 하는 공포 상황을 맞이 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정신이 아니다. 인간적으로 살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였을 뿐이다. 돈으로 신념을 사고, 자유를 사고, 연민을 사는 자본적 정신으로 매몰된 인간성을 구원하는 목소리다.
2007/08/18 00:17 2007/08/18 00:17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