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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26 파렴치한 구상권 주장 by DrunkenSTAR (18)

아프간 피랍자들이 곧 석방될 수 있는 가 보다. 세상이 발칵 뒤집혔던 40여일 동안 사람들은 두 가지 분노를 표출했다. 하나는 탈레반에 대한 분노, 이것은 두 명의 피랍자가 살해 당하면서 군사행동 여론까지 치닫는 보편적 분노를 자아 냈다. 다른 하나는 기독교에 대한 분노, 기독교의 무차별한 선교 방식이 화를 불렀고 그동안 기독교가 벌인 예수님 판매 방식의 기독교 선교에 치를 떨던 대중들의 이유 있는 분노를 불렀다. 이유가 있어도 찬찬히 뜯어 볼 일이지만, 한국사회가 그렇게 교양 있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마치 전체의 합의인양 대중을 등에 업고 덧글 폭력에 나선 사실은 이미 주지적이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아프간 피랍자들이 곧 전원 석방될 것이란 보도(아직 확인은 안됐지만)가 나왔고, 그것도 몸값을 지불할 것으로 예상되자 서서히 구상권 얘기가 불거지기 시작한다.

"구상권이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그 사람의 빚을 갚은 사람이 다른 연대 채무자나 주된 채무자에게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

대중의 분노가 증오로 이어지는 지점에서 구상권이 존재한다면 증오를 이해하는 차원도 달라져야 한다. 기독교가 종교의 믿음과 예수의 헌신을 자본적으로 해석하여 교회를 상업화 시켰던 한국 종교의 부조리에 가해지는 분노를 이해한다 해도 피랍자들에 지불 될지도 모를 몸값에 대한 국민 구상권 주장은 공동체도 이성도 없는 자본교환적 존재들의 폭력일 뿐이다. 응당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야 할 사람들에게 '몸값은 세금' 을 주장하는 소위 애국주의자들은 보통 사람들의 이성마저 피곤하게 만든다. 마치 국가가 세금을 푸대자루에 싸 담아 피랍자 가족을 대신하여 탈레반과 협상을 하고 있는 것 처럼 몰고 가는 발상은 예수를 상업화시킨 종교와 이론의 야합만큼이나 창조적이다.

누구든 적어도 자기가 준 것과 동등하다고 생각되는 반대급부가 없다면 남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것을 주려고 하지 않는 천박한 공동체 정신에 이러한 계약 관계가 마치 합리적인 공동체인양 선동하는 등가의 원칙속에 탄생한 OECD 가입국, 대한민국을 잘 살펴보면 개인은 본질적으로 항상 분리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공동체적 문제와 정당한 비판의 대상을 분리해서 해석할 수 있는 자정이나 학습 능력이 사라진 사회에서 개인은 더 이상 사회적 존재가 아니다. 다만, 실체적 개인과 관념적 대중만으로 이루어져 있게 된다.

이를테면, 구상권의 주장은 돈이 없으면 납치되도 풀려 날 수 없는 사회를 주장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개인은 이 상황이 개인과 관계가 없고 세금이 개인을 위해 한 일이 없었던 증오와 결부시켜 주장하게 된다. 굳이 '네 가족이 그 상황에 처했어도?' 라고 물어도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분리 되어 있다는 해석으로 무마할 일이 아니다. 애국과 국익을 동일 시 하고 애국한다고 나서는 사람들의 애국은 대게가 남을 불편하게 하는 일들 뿐이다. 생업하는 사람들을 동원하고 국가와 민중을 이반시키고 공포를 유발하며 국가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포기하게 만든다. 게다가 대게가 국익이 아닌 것도 일단 관념적 애국의 범주 안에 들게 되면  반대 없는 동의와 다수결의 원리로 비판적 소수를 집단으로 폭행하기 일쑤다. 이쯤되면 국익이나 애국이나 개인의 이익이나 손해 따위의 경계가 무너지게 된다. 국익과 개인의 이익을 동일시 하고 국가의 손해를 개인의 손해로 일반화하게 된다. 개인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 대도 국가에 물어 내야만 할 것 같은 기분 따위에 빠진다. 자신이 어떤 폭력을 저지르는지 모르는 상태, 판단 상실의 증후군에 빠진다. 이러한 증후의 상태에서 공동체가 공동체의 구성원을 함께 보호하고 보호 받아야 하는 의무와 권리는 그들이 주장하는 국가의 이익이나 손해 따위로 매장된다. 이건 사회도 공동체도 아니다.

근대 공화적 공동체에 세금의 위치는 국가적 국익이 아니라 공동체적 공익이다. 세금을 어떻게 국가의 쓰임만으로 판단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동안 정부가 행해 온 부패를 견주어 세금에 대한 부정적 의미는 정당하다 볼 수 있다. 하지만, 아프간에 피랍된 사람들을 위해 쓰이는 우리의 세금이라면 그동안 아프간과 이라크 파병에 세금을 쏟아 부은 정부의 허튼 쓰임새보다 휠씬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들을 싸잡아 기독교에 대한 증오로 치부하는 것은 옮지 않다. 그들의 문제와 살아 돌아와야 하는 문제는 분리시켜야 정당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가 또는 대중이 구상권을 주장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건 파렴치한 행위다.

2007/08/26 18:05 2007/08/26 18:05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