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음

2008/08/14 19:08 / 생각
연일 올림픽 열기가 뜨겁다. 무게를 들고 내리는 역도가 그렇게 몰입성이 강한지 어제야 알았다. 사재혁이 금메달, 기뻐해줄 일이다. 그의 금메달에 내 감정을 함부로 이입시켜 기뻐해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대게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우리나라 사람, 한민족, 대한민국 이런 전통적 멘탈리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기뻐해줄 수 있다면 기뻐해줄 수 있다. 그가 어떤 종류의 인간이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 사족을 달 이유도 없고 그저 평범한 사람의 그것처럼 잘했다고 기뻐해줄 수 있다. 그리고 그 영광과 기쁨을 함부로 나누지 않고 오로지 사재혁에게 돌려 주는 일도 잊지 않고.

개인의 영광과 기쁨을 전통적이거나 체제적 멘탈리티에 묶어 함부로 나누려는 시도는 개인의 독립적 의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언론매체와 국가로 부터 나온다. 이것은 실질적 공동체가 없는 계약으로 해석되는 이익사회 즉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사회일 수록 더욱 열광적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밖은 온통 인간적 연대를 잃어 버린 삭막한 정글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잘 살기를 원하지만 절대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잘 살기를 원하는 관계로 자신의 기준을 조정한다. 따라서 스스로 삭막한 정글을 만들었지만 인간이란 본능적 부대낌과 살가움에 목말라 한다. 이 멘탈리티를 정치적으로 묶어 함께 기뻐 할 수 있는 금메달로 정의하여 선동하면 기뻐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기 때문에 아무나 껴앉고 웃을 수 있다. 이 살가운 풍경, 오랜만이지 않은가?

공동체 지향적인 사회라면 이 살가운 풍경에 열광하진 않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항상 인간적 연대를 적당히 유지하는데 금메달을 땄다고 더 살갑고 하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저 그 노력과 영광에 박수 정도. 그런 사회는 아마도 이배영을 함부로 영웅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 실패로 얻은 국가적 영웅 타이틀을 4년동안 노력한 금메달의 영광과 바꾸기 위해 올림픽에 출전한 것도 아니고 아무튼 그래서 금메달보다 더 행복할지 모를 일 아닌가. 대게의 사람들이 올림픽을 국가적 행사나 국가적 경쟁 무대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올림픽을 사생활로 본다. 어떤 개인이 어떤 개인과 4년동안 고독과 외로움을 통해 수련한 자신을 겨루는 일이다. 현대 사회의 미디어 때문에 다 까발려 지긴 하지만 금메달? 그 영광은 그의 오랜 수련에 대한 영광일 뿐. 국가적으로 그게 모 그렇게 대단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올림픽 10위? 올림픽 10위인 우리나라는 영장 없이도 인도에서 촛불 켜고 쥐새끼 쥐구멍엔 볕들 날 없다고 외치면 강제로 잡아가고 64일째 단식으로 억울하게 뺏긴 밥그릇 좀 찾아 달라고 물이 가득찬 폐를 부여 잡고 있어도 그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올림픽 10위 따위를 국가적 규정으로 인식하는 이런 천박한 주책에서 벗어 나야 한다. 이런 수준의 교양이 정권이나 권력으로 부터 나왔다고 책임을 회피하는 일은 더욱 치명적이다. 하지만 더 치명적인 것은 제 밥그릇 못 찾은 이배영을 안타까워하며 제 생활속의 밥그릇은 어디다 뒀는지도 모르는 못 가진 사람들의 순진함이다. 천박한 주책은 그래도 최소한 이런 순진함을 이용이라도 한다. 대한민국, 올림픽 10위가 네 밥그릇 보다 중요해, 64일 단식하는게 뭐가 중요해 올림픽 10위라니까. 국가가 공동체일까. 특히 오늘날 우리가 사는 국가는 구성원이 있고 공동체가 존재하는 국가일까. 공공이 민영으로 치닫는 이 끔찍한 상황에서 못가진 자들 끼리 서로 도와 밥그릇 찾아 주는 일에 이렇게 인색해도 되는 일일까. 올림픽은 사생활이다. 그 사생활에 박수쳐줄 여유가 있어 좋다. 64일째 단식으로 제 밥그릇 찾는 사생활에도 우리의 여유가 발휘되고 다시는 억울하게 뺏길 일도 제 혼자서 고통 받아야 하는 일도 없기를. 하지만 오늘도 그들은 죽어 가고 있다... 언제쯤 그들이 먹을 수 있을지...
2008/08/14 19:08 2008/08/14 19:08
DrunkenSTAR 이 작성.

국회의 필요

2008/03/11 15:52 / 생각

여야 모두 공천이 한창이다. 사실 오늘날 국민들은 제와 제공동체를 대표할 국회의원을 뽑는 것에 그닥 관심이 없다. 단물 다 빠진 노인네가 경륜이란 파렴치로 끝내 기득권을 수성하는 모양새에도 될때로 되라지다. 각 당이 개혁이란 진부한 이름으로 벌이는 공천심사가 흥행중인 것은 이른바 공천은 남의 집 불구경처럼 굳이 손쓰지 않아도 솔찮은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다리품을 팔아야 하는 선거와는 다른, 일종의 써커스이기 때문이다. 진정성 없는 정치언어인 '국민의 뜻', '민심' 따위로 어르고 때론 협박하지만 결국 권력과 계파, 능력은 없지만 전략적이란 이름의 정치 연예인, 죄가 덜 있는 도토리를 찾는 과정일 뿐이다. 결국은 옮바른 사상이나 윤리도 없으면서 돈과 권력에 시종 노릇을 할 사람들을 뽑아야 하는 긴 과정을 겪어야 하는 국민들은 지루하고 피곤하다.
국회의 필요성에 대한 심각한 질문은 여전히 민주주의란 에메랄드빛 커튼에 가려 도저히 담론으로 인정 받지 못한다. 국회의원이 더 이상 공동체의 대변자가 될 수 없는데는 공감하면서 여전히 국회의원을 뽑아야 하는 갑갑한 현실을 '개혁' 할 수 있는 것은 국회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이다. 제 필요에 의한 작은 공동체로 돌아 갈 수는 없는 것일까. 기능을 잃은 299명이 얽혀 있는 부패의 고리가 도대체 우리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에 무슨 소용인가. 2999명, 또는 그 이상의 공동체 대변자가 제 필요에 의해 생겨나 더 많은 연대와 우애를 소통하고 다질 수는 없는 노릇일까.

2008/03/11 15:52 2008/03/11 15:52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