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할 수 있을 만큼

2009/09/09 12:55 / 생각
누구나 떠나기 위해 공항에 간다. 공항은 마음이며 옷가지가 온통 구겨진 채 치르는 이별의 장소다. 공항에서 한 젊은이가 떠난다고 해서 새로울 것은 전혀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법에도 없는 강제추방' 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의 살점을 격하게 뜯어 냈다. 또 몇몇은 급하게 빨간약을 발라 댔지만 뜯기고 바르는 짓을 동시에 하다보니 어떻게 베었는지 조차 정신이 없었고 아물어야 하는 시간도 가질 수 없었다. 우리나라 특유의 연예 시스템인 연습생은 꿈을 먹은 자에게 독이다. 하지만 그걸 마셔야 꿈을 이룬다니 못 마실 이유도 없다. 독을 마시고 독하게 견뎌도 고만고만한 꿈을 이루는 자도 독하게도 몇 되지 않는다. 4년이라 했던가, 게다가 그 시간이 그 시스템의 암묵적인 기본 이라면 치뤄야 할 시간은 온통 비정규적인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연예인이 되겠다는 꿈이나 이른바 공부 잘해 사회에서 성공이란 수식으로 대접 받을 전문직 종사자가 되는 꿈이거나 감당해야 하는 고통을 준다. 우리는 그것을 견뎌야 한다고 가르치고 배웠다. 꿈이 어떻든 간에 일정한 독을 마셔야 하는 것이 당위인 세상이다. 감당의 여부는 개인의 문제다. 우리는 제도적으로도 일관된 사회적인 삶을 위해 비정규적인 시간이 2년이상 지속되면 안된다는 합의를 가지고 있다. 물론 4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인이 감당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꿈이 있다하여 2년이든 4년이든 견디는 몫은 오로지 개인이 진다.

감당할 수 있는 시간 끝에 꿈을 이뤘다고 치자. 모든 꿈의 이룸은 기득권이 된다. 누구나 이 기득권을 지키고 싶어 한다.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을 통해 꿈을 이뤘으니 이제 그 꿈을 버려라, 너를 위해 또는 다른 사람을 위해 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기득권을 지키는 것은 후천적인 본능이 된다. 어떻게 이룬 건데 버린다는 건 말이 안된다. 우리는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 책임이란 사실을 종종 잊고 산다. 책임지고 뭘 하겠다, 책임 져라 따위의 말을 수없이 많이 듣는다. 이 언어의 정치적 감수성 때문에 무책임이 책임인 등식이 성립되는 일들도 한 없이 목도했다. 좌우간 책임은 현상의 귀속이고 자유로운 인격의 결정이다. 청춘들의 꿈이나 어른들의 꿈이나 매한가지로 사회적인 것이고 사회적인 것에서의 획득, 돈이거나 위치이거나, 이기 때문에 책임을 가장 가시적인 돈이나 위치의 변동으로만 얘기한다. 현상의 귀속이 사람에게 되어야 하는 것이 보편적일지 모르나 책임의 형태가 반드시 돈이나 거취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회는 참으로 엥똘레랑스 하다. 인격이 그 둘을 합쳐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니까.

우리는 책임을 다 져가면서 인격을 실현하는 양심을 부여 잡고 살고 있지 못하고 있다. 조금씩 악을 행하며 거대한 행복을 추구한다. 누구나 세상을 민망하게 살아 간다. 특히나 책임을 어떤 제도로 구속하고 그 안에서 기득권이 추구되는 사람들에게서 발견하는 민망함은 우리의 모습으로 일반화하여 쓰기에는 너무 구리고 상스럽다. 언어도 현상도 스스로에게 귀속시켜 본적이 없는 태도를 통해 우리는 기득권이 수성되는 방식을 배웠다. 나아가 저것이 정치 라는 왜곡도 서슴치 않는다. 그로 인해 우리에겐 면역이 생겼다. 아울러 그 유전자가 세계의 어느 곳에 있든, 재미교포건 재일교포건 상관 없이 같은 진화성을 품고 퍼진다. 꿈? 시간이 걸릴 뿐 다시 꿀 수 있다. 버림을 당하면 당했지 이룬 꿈인 기득권을 버려 본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책임지며 살아 가는 법 대신 그것이 무엇이든 한번 얻은 기득권을 지키는 방법을 배우며 살아 왔다. 다시 꿈 꾸기 위해 새로운 독을 마실 시간을 떠올리면 심장이 저절로 떨린다. 소박한 꿈은 그야말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필요가 없는 꿈일 뿐이다. 이루지 못하더라도 지향만 하는 꿈이 사실 행복인데도 우리는 그런 꿈을 꿈의 범주에 넣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어떤 교환가치적 인정을 받을 수 없고 민망해 할 필요도 없으니까.

재범이 한국, 한국인을 욕한 것 그것도 그의 인격이었다. 게다가 그의 인격이 리더로서 민망하고 그 발언 자체도 잘못이었다고 생각했던가 보다. 두말 않고 격한 청소년의 감정 처럼 시원하게 떠났다. 어떤 이는 그는 계약기간도 남아 있고, 반드시 복귀한다, 그게 시나리오다 라고 한다. 회사차원에서 잠수 좀 타라는 조폭스러운 감수성에 기대어 결과적으론 동정이 될 여론에 줄서 보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 어른들의 애국심 같은 것에 호들갑을 떨어 봤자 아마 이건 극복 안될꺼야, 냉소하고 만다. 그가 복귀하는 시점까지의 시간 동안 그가 치룰 개인적인 고통 또한 낡아 빠진 타인의 고통 중에 하나일 뿐이다. 다만, 민망하게 사는 어른들의 그 자랑스러운 민망함이 도무지 이해가 안될 뿐이다. 그것이 정의 인양 행복인양 살아가야 하는 우리 사회의 척박함이 부끄러울 뿐이다. 오늘 나의 호주머니속으로 들어온 돈은 누군가의 피다. 누군가의 피로 우리 스스로의 살을 찌우는 삶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미안해 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꿈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독을 마셔야 하고 소박한 꿈을 지향하는 것에 슬퍼해야 하고 감당하지 못할 삶을 강요 당하는 아이며 어른들은 또 얼마나 안타까운가.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젊은이 하나가 기득권을 버리고 떠났는데 여러 생각이 든다. 왜일까... 부엉이 바위도 오버랩 된다.
2009/09/09 12:55 2009/09/09 12:55
DrunkenSTAR 이 작성.

커뮤니케이션

2008/08/25 16:55 /

나는 충분과 부족, 필요와 불필요에 대한 인정이 빠른 편이다. 어떤 이는 이걸 끈기라고 하던데, 나는 대책 없는 끈기가 스스로를 보호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숙달된 몸은 그것에 먼저 반응한다. 정신력 같은 것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아프면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조난신호를 보내지 않았는데도 내가 아프면 덩달아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는 이걸 책임이라고 하던데, 책임은 사람의 수명을 단축시키곤 한다. 사람들은 책임이란 언어에 지나치게 관대해서 때로는 이걸 자신감이라 부르기도 한다. 자신감은 아무 것도 책임질 수 없다. 그건 오로지 스스로에 대한 자신만의 인정일 뿐이다. 게다가 쉽게 지친다. 자신감도 스스로를 오래도록 보호해주진 못한다. 책임과 자신감을 섞어 일을 벌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를 보호할 이기심을 가진 존재다. 오래도록 스스로를 보호하며 제수명대로 살며 일할 수 있는 방법은 서로 더 부대끼는 방법 밖에 없다. 이걸 나는 조직이라 부른다. 부대끼는 방법은 더 많이 얘기하는 것이다. 더 많이 얘기할 수록 조직은 명쾌해진다. 명쾌한 조직은 더 많이 얘기하게 되고 얘기하면 할 수록 스스로를 보호하는 일이 서로를 보호하는 일이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책임은 분산되고 수명을 단축하는 일도 줄어 든다. 결국은 서로의 생명을 돌보며 행복해지고 스스로의 삶은 명쾌해진다.

2008/08/25 16:55 2008/08/25 16:55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