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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04 사교육과 아비의 소망 by DrunkenSTAR

나는 공교육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또는 얼마나 멍청한지 알지 못하지만 사교육이 꽤나 영리하다는 것을 지난 9개월동안 알게 됐다. 사적 교육 기관은 더 이상 어설프게 단위 과목을 팔지 않는 대신 온갖 아름다운 수사를 다 동원하여 '아이들의 미래' 를 얘기 한다. 투박하게 얘기해도 아이들의 미래는 좌빨이나 우꼴통이나 공통적으로 먹히는 주제다. 도대체 아이들의 미래 란 무엇일까. 정작 아이의 미래에 대해서 입을 벌리고 닫는 학부모들에게서 미래란 찾아 보기 힘들다. 온갖 염려와 현실 불만 투성인 푸념을 철수, 영희 엄마에게 들은 대로 늘어 놓는다. 다들 학원에서 듣고 온 아이들의 미래 때문에 아빠의 무능과 할아버지의 상속에 대해서 진지한 정보를 나눈다. 한국 교육에서 아이의 미래는 아이로 부터 나오지 않는다.

남보다 앞서 나가고, 나처럼만 안살면 된다는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서너시간 수다를 일삼는 학부모들이 장담컨데 7할 이상이다. 나처럼만 안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에게서 아이는 도대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러한 설득은 페이소스 비슷한 것과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 남보다 앞서야 하는 사회적 구조와 나처럼만 아니면 된다는 눈물 겨운 히스토리에 무너지지 않을 아이가 있을까. 아이는 양자택일의 길에 설 수 밖에 없다. 잠자코 이 현실적이지 않은 현실에 따라야 하는지, 지금부터 담배나 꼬나 물고 공원을 때지어 쏘다니며 새로운 인생을 찾아야 하는지. 사교육 기관, 아니 사교육 기업은 이 지점의 요로를 영악하게 파고 든다. 서울대 합격 몇명 플랭카드를 학원 건물에 내다 거는 동네 보습, 단과 학원 얘기가 아니다.

학원은 어떻게 기업이 되었나, 영어, 자본은 예상한 아이템이다. 하지만 결정적 방아쇠는 아이러니하게도 전교조가 거리에 누워 수호하는 고교평준화의 확대 때문이다. 이게 없었다면 휴~ 학원기업에서는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고교평준화는 어떻게 소비하며 살까 고민하는 계급의 부모들을 패닉 상태로 만들었다. 어느 학교 다닌다, 는 변별력이 사라진 아파트 단지는 침묵에 휩싸였다. 이때, 공고, 예술고 쯤으로 알고 있던 특수목적고등학교 중에 외고, 자사고가 등장한다. 이들의 무기는 당연히 변별력과 수월성이다. 부모들은 환호한다. 학군을 쫒아 다니며 이사를 가던 번거로움도 덜어 진 듯 했다. 하지만, 이사는 여전히 다녀야 한다. 이른바 학원가 버블8 지역이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 짓는 구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3불정책의 하나인 고교평준화가 학원을 기업화 시켰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줄 안다. 물론, 조심해야 한다. 따라서 고교등급화, 내지는 고교평준화 해체로 가야 하는 논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일반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단과 학원을 다니는 것과 특목고에 가기 위해 버블 8 지역의 학원을 다니는 것은 구분지어야 한다. 한해 입시생이 대략 60만이다. 이 구분은 40만 대 20만 정도로 분리된다. 40만은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라도 가려는 학생, 20만은 학원 버블 8 에서 특목고를 준비하는 학생이다. 한해에 특목고 정원이 대략 1만명이다. 1만명에 들기 위해 20만명이 학원을 다니고 이것이 학원기업의 시장규모다. 반항할 것인지 현실을 따를 것인지 정신을 차려야 하는 시기는 고등학교 때가 아니다. 중학교 아니다, 초등학교 3학년 부터다. 40만인지 20만인지 초등학교 3학년이면 결정된다. 밤10시 이후 학원교습을 금지 시키건 말건 학원은 다들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준비하니까, 2학년때부터 준비하라고 선전하면 된다. 차라리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피아노, 태권도 학원 외에 사교육을 금지 시키는 편이 덜 순진한 정책이다.

해마다 인구는 줄어 들고 있다. 사교육 기업은 하루 24시간이 아니라 인구 수에 더 집착한다. 이에 맞는 마케팅 전략은 자정까지 영업시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계층의 학부모를 대상으로 더 어리거나 운전면허학원이 유일한 사교육이 되던 계층까지 아우르는 것이다. 대학은 정해져 있다. 신생 대학이 갑자기 SKY 반열에 오르기란 쉽지 않다. 대교협에 앉아 있는 꼰대들이 절대 용납치 않는다. 하지만, 중학교나 고등학교는 된다. 자립형, 자율형 사립고라고 선언만 하면 된다. 이명박은 300개 자사고를 만들어 경쟁을 줄여 사교육을 안정화시키겠다고 했다. 이런 학교 건설이 진행되면 산술적으로 일반고에 진학하려던 40만에 대한 사교육 마케팅이 가능해진다. 동네 보습학원의 플랭카드가 아니라 대형 버스를 대절하고 근사한 자동문이 열리고 닫히는 강남 사교육 기업의 마케팅이 스타벅스 퍼지듯 한다는 얘기다. 이 지점에서 암초를 만난다. 온갖 것에 다 핑계가 되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재정적자가 그것이다. 시민단체나 전교조의 반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해마다 인구는 줄어 드는데 시장이 넓어 질리가 없다. 단위 과목이나 학생마다 더 많은 교육비를 지출하도록 하기에는 정부의 사교육비 제한이란 유일한 명분에 너무 맞서는 기분이다. 그렇다면 인구통계적으로 더 어리거나, 더 늙거나 이다. 마케팅의 기본이다.

10시 이후에도 장사를 하는 학원이 있다면 경찰력을 동원해서라도 막겠다고 한 곽승준은 홍준표에게 얻어 맞을 만 하다. 모르긴 몰라도 이명박 한테는 엎드려 뻗쳐 당했을 일이다. 공정택 교육감 당선을 통해 위기감에 연대할 줄도 알게된 이 지역 유권자들은 이명박정권의 핵심이다. 이 곳에 경찰력을 투입한다? 그것도 아이들을 간접적 대상으로 하여... 말도 안되는 얘기다. 그렇다고 학원기업의 마케팅을 정지 시킬 수도 없다. 이른바 진보적 개념 연예인이라 믿던 신해철이 대표적인 학원기업의 CF 모델로 '자녀에게 맞는 학습 방법과 목표를 확인하라' 고 독설을 외치는 것이 개념적인지 진보적인지 따위로 논리의 추상성을 확대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학원의 배울만한 마케팅 전략에는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인구통계를 넘어 정치성향적 시장 확대를 노리는 영리한 행보다. 아이의 삶에 질이나 계급 상승의 교육적 욕구는 진보나 보수의 경계가 따로 없다는 리얼리티의 결산인 셈이다. 입이 달토록 이명박을 비난하는 아비도 쉬쉬하며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정치성향과 교육의 미묘한 입장차이를 양심불량으로 까지 몰아 가지 않아도 되는 절묘함으로 가득찬 함축이라 하겠다.

주위의 학부모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학교 선생을 비웃는다. 전교조 선생을 만나면 마인드는 있는데 기술이 안되고, 교총 선생을 만나면 기술은 있는데 마인드가 없다는 식이다. 공적 교육을 받는 12년은 누구나 동의하듯 아이들의 삶에 행복과 더불어 사는 인간성을 배우는 시간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기술이 없고 마인드가 있고 또는 그 반대로의 경우처럼 그 간극은 결코 좁지 않다. 교육적 이해를 키워야 한다는 이 땅의 아비들에게 교육의 근원적 물음이나 저 우주적 간극의 대립속에서 어떤 판단을 구할 수 있는 여유는 없다.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다행이 아이들의 죽었다는 것은 알고 있는지)이명박 정권을 때려 부셔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자신도 변해야 한다는 용기가 쉽사리 들지 않기 때문에 이 땅의 아비들은 괴롭다. 아이가 공교육만으로 인간답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걸까. 어떤 진보주의자는 지금의 교육적 현실이 비현실적이 라고 말한다. 이런 순수한 선언에 선동될 학부모가 도대체 이 땅에 얼마나 남아 있을까, 그런 순수한 학부모는 공룡에 가깝다. 한집 걸러 한집에서 날마다 발생하는 교육과 경제력과 이해력의 갈등을 온 신체로 느끼는 현실을 비현실이라고 요약하는 어떤 진보주의자들의 근본주의야 말로 전혀 리얼리티 하지 않다. 공교육을 살리자 는 총론의 각론에는 사교육의 규제와 놀라움이 마구 뒤엉킨 지옥 같은 현실을 묘사하고 있는데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있어도 공교육은 도리어 공허한 선생들의 간극으로만 남아 인신공격을 해댄다. 무엇이 제정신인지 알 도리가 없다.

미국이 금융기관을 국유화 하려는 것처럼 나는 학원기업을 국유화하지 않고서는 사교육 문제는 조금도 해결될 수 없다고 본다. 공교육을 살리는데 사교육의 규제가 필수라고 생각하는 혐오스러운 정책논리에 조금이라도 조응하고자 한다면 더더욱 국유화가 실체성을 띈다고 본다. 좌파, 우파를 막론하고 가장 비슷한 현실감각을 따르는 교육의 현실에 있어서 이 또한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따라서 사교육 자체의 문제는 사회 내지는 체제 변혁적 문제로 승화되지 않고서는 절대로 풀어 낼 수 없다. 정치성향도 바꾸지 못하는 이 정직함 앞에, 계몽이란 언어 조차 용기가 필요한 마당에 정말 할 수 있는 개인적인 저항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국유화 따위의 무정부적 비웃음을 비켜 나가 그저 아이에게 "그래도 네 꿈은 뭐니?" 라고 물어 볼 수 있는 아비라도 되려면 아이 뿐만 아니라 아비도 자신만의 꿈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마도 아비의 그 꿈이 아이를 아니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꿈을 대신 꿔주면서 아이를 지배하던 교육이란 이름의 제도를 벗어나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다만, 제발 그 꿈을 헛갈리게만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신해철이 사교육 광고를 하는 것 까진 쩐의 논리라 할 수 있겠지만 굳이 지 개념을 조목조목 설명하지 않았으면 하고, 행복과 인간성은 생각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아들의 책값, 딸의 등록금을 위해 어미는 식당일을 아비는 대리운전을 해야 하는 것이 가족이라고 선전하는 이명박의 라디오 방송이 없었으면 좋겠다.

2009/05/04 16:19 2009/05/04 16:19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