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을 쟁취한 위정자들은 대중의 심리를 자신의 야심에 맞게 통제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대중의 심리는 일반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믿는 방향으로 움직이거나 전통적이며 규범적인 가치관의 테두리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대중의 속성은 위정자들의 좋은 표적이 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이 대부분 옮다는 다수결의 민주주의가 실은 위정자의 야심에 의한 재단이거나, 정치적 한계성을 드러낸 대중 심리의 신화성이라는 점은 결코 파격적인 생각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황우석을 보았고, 지난날 전두환을 보았다. 게다가 도덕적 위험 인물로써의 최연희까지. 그리고 그들을 옹호하는 맹목적 추종자들의 해로움을 본다.
성에 관한 도덕적 인식에 있어서 대중들은 파쇼가 파악한 대중의 일반 속성을 그대도 답습하고 있다. 성의 인격에서 술의 인격으로 본질을 흐리더니, 과업으로 도덕을 덮고 사람과 나라를 동일 시 하는 전체주의의 망령을 무덤에서 파 낸다. 같은 여성이라도 다른 정치적 위치에서 도덕을 바라본다. 진보세력의 문제가 내부에 있듯 여성의 여성성에 대한 최대의 해로움이 도덕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보편적인 가치관이 정치성에 의해 다른 판단을 하게 이른다면 여성의 최대의 적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일 수도 있다.
대중들의 집단 인격이 불분명하더라도 대중이 취하는 관심이나 무관심, 추종이나 반동에는 책임이 있어야 한다. 그 책임의 수위는 공인에게 기대되는 수위와 결코 낮아서는 안된다. 책임이 낮을 수록 대중의 다수결은 신화성에 근접하게 되어 있고, 신화는 위정자들의 입맛에 맞게 파쇼로 재단된다. 대중은 몇몇 야심찬 기득권력자들에 의해 심리를 파악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정리된다.
사건에 있어서 가장 해로운 태도는 담론의 가치조차 없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대중의 규범적 다수결이다. 책임이 떨어진 대중에게 깊은 통찰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러므로 대중은 철저히 어떤 야심가가 펼치는 레토릭에 편 갈라진다. 그리고는 상대적으로 다수가 집결한 편에 서서 웅성거리는 립싱크에 열중한다. 그 편의 가장 뒷줄에 황우석, 전두환, 최연희가 졸졸 따라 붙어 있다.
성에 관한 도덕적 인식에 있어서 대중들은 파쇼가 파악한 대중의 일반 속성을 그대도 답습하고 있다. 성의 인격에서 술의 인격으로 본질을 흐리더니, 과업으로 도덕을 덮고 사람과 나라를 동일 시 하는 전체주의의 망령을 무덤에서 파 낸다. 같은 여성이라도 다른 정치적 위치에서 도덕을 바라본다. 진보세력의 문제가 내부에 있듯 여성의 여성성에 대한 최대의 해로움이 도덕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보편적인 가치관이 정치성에 의해 다른 판단을 하게 이른다면 여성의 최대의 적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일 수도 있다.
대중들의 집단 인격이 불분명하더라도 대중이 취하는 관심이나 무관심, 추종이나 반동에는 책임이 있어야 한다. 그 책임의 수위는 공인에게 기대되는 수위와 결코 낮아서는 안된다. 책임이 낮을 수록 대중의 다수결은 신화성에 근접하게 되어 있고, 신화는 위정자들의 입맛에 맞게 파쇼로 재단된다. 대중은 몇몇 야심찬 기득권력자들에 의해 심리를 파악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정리된다.
사건에 있어서 가장 해로운 태도는 담론의 가치조차 없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대중의 규범적 다수결이다. 책임이 떨어진 대중에게 깊은 통찰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러므로 대중은 철저히 어떤 야심가가 펼치는 레토릭에 편 갈라진다. 그리고는 상대적으로 다수가 집결한 편에 서서 웅성거리는 립싱크에 열중한다. 그 편의 가장 뒷줄에 황우석, 전두환, 최연희가 졸졸 따라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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