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점검 농성을 노동자들의 반복적인 투쟁, 자기 밥그릇 찾기의 일환으로 보고 있는 듯 합니다. 77일간 옥쇄 투쟁을 하였고 아직도 몇명은 공장의 굴뚝위에서 똥 오줌을 받아가며 퇴약볕을 견디고 있습니다. 어느 평범했던 주부는 이 기가막힌 상황을 지켜보다 남편과 아이들을 남기고 자살을 했으며 요 며칠 동안은 전기도 물도 음식도 없는 어둠 속에서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기적적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그들의 가족들은 이 공포스러움에 떨고 있을 남편을 위해 거리에서 우리들을 살려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틀동안 경찰은 경악스러운 살인 진압을 감행했습니다. 살려 달라는 인간의 호소에 헬기를 동원하여 최루액을 투하하고 전기총으로 감전시키고 서너명이 둘러싸고 진압봉과 군화발로 못먹고 못마신 몸뚱이를 짓밟았습니다. 그들의 요구가 잘 살게 해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수천억원을 지원해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무급휴직 해달라는 것 입니다. 그저 우리 가족들 살려달라는 것 입니다. 살려주지 못하는 우리의 관심과 인식을 돌아 봅시다. 거창하게 민주주의를 외치고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무슨 대단한 위치 쯤 되는냥 선전이나 하는 모습을 돌아 봅시다. 살려 달라는 사람들을 모른체하고 도리어 공권력이라는 전혀 공적이지 못한 물리력을 암묵적으로 용납하는 우리의 태도 말 입니다. 우리의 수준이 도대체 민주주의를 얘기하고 국가 브랜드 따위를 들먹일 수 있는 수준 인가요?

같은 노동자들은 어떻습니까. 한국노총이 MB정권의 앞잡이가 되고 민주노총마저 지도력과 운동성을 잃어 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대기아자동차를 비롯하여 그 강성한 다른 금속노조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자신들의 일이 아닌양 뒷짐 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같이 일하던 비해고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사측이란 이름으로 해고노동자, 그들의 가족들을 위협하고 자본가를 대신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찬 정상조업이란 완장은 그 자체로 우리의 역사 입니다. 일제와 미군정과 한국전쟁을 거쳐 살아 남은 반민족주의자들의 청산되지 못한 완장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쌍용자동차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이건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연민하지 않고 연대하지 못하는 우리의 자세는 변하지 않았기에 해결된 것은 없습니다. 이 권력은 어떤 형태로든 청산될 것이고 댓가를 치루게 할 것 입니다. 하지만, 뒷짐 진 대게의 사람들, 사측이란 이름으로 폭력을 맘껏 행사한 비해고노동자들의 파괴된 공동체의식은 다시 회복될까요? 솔직히 쌍용자동차를 위해 특별 세금이라도 더 내야 한다면 기꺼이 내겠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사라진 연민과 연대 의식 입니다.
2009/08/06 13:54 2009/08/06 13:54
DrunkenSTAR 이 작성.

법치란?

2009/07/03 15:16 / 생각
법치는 "법에 의한 통치"란 단순한 단어풀이가 아니다. 현대국가의 국민은 국가에 모든 폭력을 위임했다. 이에 국가는 모든 폭력을 독점적으로 지배한다. 법치란, "그것을 행사하는 국가가 공권력이란 고유 권한을 집행할 때 엄격한 법규범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권력 행사 시에는 모든 국민의 자유, 헌법적 가치, 인간의 존엄성을 기반한 완전한 제도적 규범적 테두리를 절대 벗어 나선 안된다. 우리가 시위를 하다가 폭력을 행사하면 공권력이 그러하지 못하도록 공권력을 행사하면 된다. 그렇다고 하여 집회, 시위 자체를 막아서는 안된다. 하지만, 최근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사태는 무엇인가?

오늘날 한반도 남쪽의 인민들에게 가학적으로 행사되고 있는 공권력은 과연 현대국가의 그것이라 볼 수 있을까? 폭력을 위임하고 폭력을 행사할 뜻이 없는 시민들이 어떻게 폭력에 가담하게 되는지 그 답은 시민에게서가 아니라 공권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공권력이 사적 집단과 영합하여 시민의 생존과 권리를 불태워 버리는 끔찍한 현장을 지켜보기도 했다. 이것은 법치의 테두리를 명백히 벗어난 무수한 사례 중 대표적인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공권력은 이미 2009년 1월22일 용산에서 법치이란 이름을 잃어 버렸다.

http://drunkenstar.tumblr.com/post/134617071/ssangyong


[추가]
이른바 지게차 공격이 사측이 아니라 노조측의 공격이란 인용이 있다.
2009/07/03 15:16 2009/07/03 15:16
DrunkenSTAR 이 작성.

근대 국가는 법치를 토대로 유지된다. 법치는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모든 시민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공권력이 엄격한 법규범으로 작동하는 것을 말한다. 공권력이 엄격한 법규범에 의해 작동해야 하는 이유는 근대 국가를 이루는 국민이 폭력의 권리를 국가에 모두 위임했기 때문이다. 국가는 모든 폭력을 독점하고 있다. 이러한 독점적 지위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의 모든 자유, 헌법적 가치, 인간의 존엄성을 기반한 완전한 제도적 규범적 테두리를 벗어 나선 안된다. 또한 이러한 공권력이 집행 될 때는 시민이 권력이나 공권력의 정통성과 권위를 인정할 때 비로서 정당해진다.

오늘날 한반도 남쪽의 인민들에게 가학적으로 행사되고 있는 공권력은 과연 근대 국가의 그것이라 볼 수 있을까? 폭력을 위임하고 폭력을 행사할 뜻이 없는 시민들이 어떻게 폭력에 가담하게 되는지 그 답은 시민에게서가 아니라 공권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공권력이 사적 집단과 영합하여 시민의 생존과 권리를 불태워 버리는 현장을 목도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의 공권력은 이미 2009년 1월22일 용산에서 공권력이란 이름을 잃어 버렸다. 지금 광장과 도시를 둘러 싸고 있는 공권력이라 함은 시민이 권위와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보통의 '청년집단', 피끓는 덩어리일 뿐이다. 따라서 그들도 마찬가지로 국가에 폭력을 위임해야 하며 무장을 해제 하고 시민사회로 돌아가야 한다.

해방 이후, 한반도 남쪽의 공권력은 한번도 시민사회와 함께 하지 못했다. 공권력은 법으로 시민을 통치하는 법치의 근본인 자유와 존엄을 지켜 본 적이 없다. 한국 사회의 공권력은 주권자인 시민의 결정 영역이 아닌 국가가 주권인 영역에서 결정되고 행동 되었다. 이것은 통치적 법치가 아니라 권력의 법치로서 그 보호 대상자는 주권자로서의 국가로 한정된다. 이 한계는 명백한 왜곡이다. 이는 근대 국가가 국민, 국토, 주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 국토, 자본으로 형성되고 그 마땅한 주권적 지위를 국민이 아닌 자본과 같은 사적 범위에 포함 시키기 시작하면서 발생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면 될 수록 공권력은 그 권한을 부여한 시민으로 부터 정당성을 인정 받을 수 없게 되고 국가의 왜곡된 주권적 행사에 자신들의 의무와 책임을 이양함으로서 그 권한의 생존을 담보 받으려 한다. 이 담보 안에 국가의 유지를 위한 국민의 억압과 유린이 있다는 것은 주지적 사실이다. 이에 대해 시민은 주권적 물리력을 행사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위임된 폭력이 자유와 존엄을 보호 하지 않고 주권적 명령에 따르지 않을 때 그 위임은 마땅히 철회되어야 한다. 따라서 오늘날 한반도 남쪽의 시민들이 행사하는 주권적 물리력은 정당하다 할 것이다.
2009/06/10 15:48 2009/06/10 15:48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