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할아버지들이 전투복을 입고 여의도며 덕수궁을 순회하며 그 모종의 연대를 실현하고 있다. 어떤 노년의 외로움의 발현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어처구니가 없다. 모든 현실의 잣대가 좌파척결에 있는 늙은 마초들의 덩어리에서 그 옛날 몇몇 전우(?)들이 버스정류장에서 만날 지 모를 사재 여성의 호기심에 들기 위해 사고 다렸던 사재 군복의 컴플렉스를 본다. 군대라는 것이 개개인적으로는 온통 열등에 쌓여 있을 수 밖에 없다. 돈많은 애들은 면제 받고 사회에서 자기보다 앞서서 공부하거나 경력을 쌓을 텐데, 여자친구는 짧은 머리보다 긴머리에 컬이 출렁이는 멋쟁이와 눈맞아서 언제 도망갈지 모르는 열등과 불안을 애국과 계급으로 승화시키는 조직이다. 할아버지들이 다시 군복을 입고 돌격 명령을 기다리는 것은 애국도 계급의 지배적인 인식도 아니다. 다만 전역 후에도 그들의 삶이 군대와 다를 바 없이 온통 불안했고 열등했다는 반증이다. 왜 그랬을지에 대한 진지한 생각은 언제나 친북좌파척결로 귀결된다. 격결만 되면 로또라는 생각, 뒤집지 못한다. 따라서 군대나 사회나 별반 다를게 없으면 차라리 전투복을 입고 컴플렉스라도 분출하는 편이 여생의 건강을 위해서도 좋지 않는가는 계산은 응당 가능하다. 다만, 예의와 공경에 대한 단어적 의미를 규범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 안쓰럽고 우려스럽고 그렇다. 게다가 경찰이 저런 덩어리를 대하는 태도란, 열등의 연대 인식이 얼마나 감염이 빠른 신종플루인지 가늠이 되고도 남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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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복(군복은 사재말이다.)을 입으면 여름엔 덥고 겨울에 추웠다. 자대 배치를 받으면 선임들이 입고 남겨둔 전투북을 한두벌 받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작업복이라 불렀다. 훈련소에서 받은 전투복은 A급으로 취급하여 휴가 갈 때 잘 다려 입고 나가려고 짱박아 둔다. 낼세운 다림질은 휴가용 전투복에나 하지 부대 안에서 입는 작업복에는 그따위 공을 드리진 않는다. 그 날선 전투복을 사재에서 멋있게 봐주지도 않는 다는 사실을 다 알면서도 휴가 전날 열심 다림질이다. 대게는 지급 받은 전투복으로 군생활을 마치지만 게중에는 사재 군복을 5만원인가 6만원인가 주고 사는 사병들이 있다. 거저 받는 전투복보다 약간은 색깔 빠진 듯한, 뭔가 파스텔톤에 가까운 얼룩무늬에 바지는 통이 넓어서 편하기도 하고 다림질로 날을 세우면 전투복이 아니라 조금은 기성 패션화된다. 어디까지나 그들끼리의 생각이다. 주목할만한 현상은 그렇게 지긋지긋한 시간을 보내고 사회에 복귀하고 극히 정상적으로 생활하다가 1년에 한두번씩 있는 예비군 훈련을 가려고 전투복을 꺼내 입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면 다리는 자연스럽게 짝다리가 된다. 평소에는 눈도 못 쳐다 보던 여성의 다리를 훌터 내리는 눈엔 온갖 마초끼가 철철 넘친다. 예비군 서넛이라도 됐으면 '유후~' 하는 감탄사도 내봄직하다. 그야 말로 제대로된 유니폼 증후군이다. 정상적인 사람도 이 얼룩무늬 안에 갇히면 근거 없는 서서쏴의 자신감을 가진다. 도무지 앉아쏴들이 알 수 없는 모종의 연대마저 느낀다.
요즘 할아버지들이 전투복을 입고 여의도며 덕수궁을 순회하며 그 모종의 연대를 실현하고 있다. 어떤 노년의 외로움의 발현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어처구니가 없다. 모든 현실의 잣대가 좌파척결에 있는 늙은 마초들의 덩어리에서 그 옛날 몇몇 전우(?)들이 버스정류장에서 만날 지 모를 사재 여성의 호기심에 들기 위해 사고 다렸던 사재 군복의 컴플렉스를 본다. 군대라는 것이 개개인적으로는 온통 열등에 쌓여 있을 수 밖에 없다. 돈많은 애들은 면제 받고 사회에서 자기보다 앞서서 공부하거나 경력을 쌓을 텐데, 여자친구는 짧은 머리보다 긴머리에 컬이 출렁이는 멋쟁이와 눈맞아서 언제 도망갈지 모르는 열등과 불안을 애국과 계급으로 승화시키는 조직이다. 할아버지들이 다시 군복을 입고 돌격 명령을 기다리는 것은 애국도 계급의 지배적인 인식도 아니다. 다만 전역 후에도 그들의 삶이 군대와 다를 바 없이 온통 불안했고 열등했다는 반증이다. 왜 그랬을지에 대한 진지한 생각은 언제나 친북좌파척결로 귀결된다. 격결만 되면 로또라는 생각, 뒤집지 못한다. 따라서 군대나 사회나 별반 다를게 없으면 차라리 전투복을 입고 컴플렉스라도 분출하는 편이 여생의 건강을 위해서도 좋지 않는가는 계산은 응당 가능하다. 다만, 예의와 공경에 대한 단어적 의미를 규범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 안쓰럽고 우려스럽고 그렇다. 게다가 경찰이 저런 덩어리를 대하는 태도란, 열등의 연대 인식이 얼마나 감염이 빠른 신종플루인지 가늠이 되고도 남음이다.
요즘 할아버지들이 전투복을 입고 여의도며 덕수궁을 순회하며 그 모종의 연대를 실현하고 있다. 어떤 노년의 외로움의 발현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어처구니가 없다. 모든 현실의 잣대가 좌파척결에 있는 늙은 마초들의 덩어리에서 그 옛날 몇몇 전우(?)들이 버스정류장에서 만날 지 모를 사재 여성의 호기심에 들기 위해 사고 다렸던 사재 군복의 컴플렉스를 본다. 군대라는 것이 개개인적으로는 온통 열등에 쌓여 있을 수 밖에 없다. 돈많은 애들은 면제 받고 사회에서 자기보다 앞서서 공부하거나 경력을 쌓을 텐데, 여자친구는 짧은 머리보다 긴머리에 컬이 출렁이는 멋쟁이와 눈맞아서 언제 도망갈지 모르는 열등과 불안을 애국과 계급으로 승화시키는 조직이다. 할아버지들이 다시 군복을 입고 돌격 명령을 기다리는 것은 애국도 계급의 지배적인 인식도 아니다. 다만 전역 후에도 그들의 삶이 군대와 다를 바 없이 온통 불안했고 열등했다는 반증이다. 왜 그랬을지에 대한 진지한 생각은 언제나 친북좌파척결로 귀결된다. 격결만 되면 로또라는 생각, 뒤집지 못한다. 따라서 군대나 사회나 별반 다를게 없으면 차라리 전투복을 입고 컴플렉스라도 분출하는 편이 여생의 건강을 위해서도 좋지 않는가는 계산은 응당 가능하다. 다만, 예의와 공경에 대한 단어적 의미를 규범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 안쓰럽고 우려스럽고 그렇다. 게다가 경찰이 저런 덩어리를 대하는 태도란, 열등의 연대 인식이 얼마나 감염이 빠른 신종플루인지 가늠이 되고도 남음이다.
오해를 하실지도 모르니까 먼저 말씀드리는 건데요, 전 육군 병장으로 전역했고, 주특기는 정보, 보직은 정보수집병 입니다. 군생활 내내 군대를 저주하며 시간을 때운 건 아닙니다. 그와 정반대조, 어떻게든 살아 가야 겠고, 언젠가는 끝날 것을 믿으며 되도록 잘 살려고 노력했었지요. 조직에 적응했다는 말씀입니다. 군대라는 조직에 적응했었다는 사실을 통해 갖가지 오해가 있을 것 같습니다만, 전 양심적 병역거부, 또는 거부자에 대한 생각보다 좀 더 과격하게 군대가 없었으면 합니다. 군대를 갔다온 사람들이 대체로 가지는 생각이 군대 가서 사람된다, 남자다워진다 라는 생각인데요, 역으로 얼마나 사람 같지 않았으면 군댈가서 사람이 될까 생각도 됩니다. 군대 갔다온 남자들이 사회에서 군대에서 있었던 일이라며 하는 얘길 들어보면 사람되는 과정을 그린 사람에 대한 얘기는 없고 순 군대 자체가 지닌 특수성과 폐쇄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람 답지 않은 추억에 대한 얘기말고는 없더라구요. 따라서 군대 가서 사람이 된다거나 남자다워진다는 말은 그들 추억의 합리화던가, 더 폭력적인 습성을 지닌다 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고 봐요. 차라리 양심적 병역거부가 휠씬 더 사람다운 생각이라고 봅니다. 사람다움이란 모름지기 양심의 소리를 듣는자라고 생각 하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양심 자체와 병역거부로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다른 사람들은 다 군대 가는데 지만 안갈려고 하는 즉, 양심에 털난 사람으로 취급하는, 몰지각한 양심을 가진 사람으로 몰아 가는데요, 여기서 양심은 존재에 대한 양심으로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가치가 부정되는 강력한 마음의 소리 입니다. 헌법에서도 보장되는 헌법적 양심이지요. 따라서 양심은 보편적인 사회적 합의의 틀안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억압 자체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보편적인 윤리와 사회적 감수성에 맞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양심은 그 주체가 개인이며 그에 따라 보편적일 수 없는 개별적인 것 입니다. 양심에 털 났다라는 말씀은 바로 사회의 보편적 선으로서 옮고 그름을 판단한 것이라 보입니다. 한가지 더, 우리사회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로 종교문제 때문에 집총을 거부한다고 생각되어졌기에 종교적 병역거부자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양심을 형성하는 것이 어디 종교 뿐이겠습니까, 종교가 아니더라도 존재가치가 부정되는 어떠한 행위 앞에 양심의 소리를 따르기를 원하는 개인은 누구나 대체 복모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헌법 19조의 양심의 보장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물의 가치에 변별력을 가지고 자기 행위의 옮고 그름의 판단과 자기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개별적으로 보장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쯤에서 그럼 나라는 누가 지키냐고 하시겠지요? 그럼 꺼꾸로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나라 지키는 거냐? 하실텐데요,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것이 비양심적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는 것이 스스로의 양심에 부합하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판단하건데 그것도 옮다고 생각한 개별적 양심일 뿐 입니다. 그러한 양심도 지켜주셔야지 비양심적이라고 하시면 양심적인 분들이 곤란해지지요.. 제가 북한의 항시적 위협을 무시한 친북좌파적인 발언을 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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