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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29 쌍용자동차에 강력한 관심을... by DrunkenSTAR
현재 쌍용자동차의 문제는 결코 새삼스럽지 않은 문제다. 우리는 기륭전자의 90일 넘는 단식과 화물연대 박종철의 자살을 목도한 바 있다. 기륭전자는 아직도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화물연대는 특수고용인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현재 쌍용자동차의 문제는 참여정부 시절 외자유치라는 명분으로 상하이 자동차에 매각하면서 불씨를 키우기 시작했다. 먹튀 자본의 대명사인 론스타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쌍용자동차의 매각에 심사숙고의 과정은 없었다. '위기 상황이 오면 가장 취약한 부분에서 철수' 하는 자본의 속성을 복기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회적 물의가 심각하게 발생할 것이 뻔이 알면서도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이유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정부는 여전히 외자 유치를 경제적 선으로 선전하고 기업은 실적이 악화되면 정리해고를 바탕으로 한 구조 조정, 이도 안되면 정부에 공적자금 손벌리기, 이도 안되면 외자 유치를 가장한 회사 정리, 경영진 보너스의 시나리오를 기계적으로 수행한다. 어느 지점에서나 피해는 노동자에게만 전가된다.

지난 26일 쌍용자동차 사측은 용역업체 직원을 동원하여 노조가 시위 중인 공장에 진입 했다. 특징적이게도 비해고 노동자 3천여명이 사측의 진입 작전에 동원 되었다는 점이다. 산업혁명 이후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이후 노동자는 '자본으로 부터 소외된 소수적 존재' 다. 그들에게 정서적 연민과 운동적 연대가 없다면 그들의 존재는 결코 개별적으로 인정 받을 수 없다. 그의 생활, 가족, 남은 삶에 대한 안전망을 두루 살피고 어루만지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은 없다. 하지만 그런 자본이나 사용자가 있을 것이란 착각은 거대한 기대를 만들어 냈다. 그래서 일까, 이 처절한 노노 갈등에서 '회사가 살아야 하지 않겠냐' 는 구호가 '함께 살자' 는 구호를 압도 했다. 비해고 노동자들은 스크럼을 짜고 공장에 진입 했다. 노동자들의 연대가 조직적으로 깨지는 이 순간을 조종하며 사용자는 수많은 명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연대도 못하냐는 근원적 비아냥에서 부터 쌍용차가 정상화 된다 하더라도 노조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며 설령 어용으로 조직될 가능성마저 높다. 정상화가 되지 않는다 해도 남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유린한 비열한 밥그릇으로 해고 노동자를 깎아 내릴 수도 있으며 노동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서적 갈등의 골을 통해 투쟁의 대오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 하물며 파산에 이를 경우 비해고 노동자들이 사측을 대변할 수도 있다. 여론은 불 보듯 악화된다. 물귀신들이라고.

쌍용자동차 문제는 참여정부의 실수를 이명박정부가 설겆이 하는 상황처럼 보이지만 이전 정권의 불씨라고 하여 현정권에 책임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나 극우보수, 신자유주의 정권에서도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하는 노동부, 복지부, 환경부 따위의 관계부처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사간 문제에 있어서 노동부는 지혜와 중재를 보태기는 커녕 매사에 경찰을 투입하여 힘으로 해결하려 한다. 하물며 무관심과 무지로 '노사간의 문제', '그들끼리 해결' 이라며 어떠한 접근도 않는데에 이르러서는 도무지 근대 국가 내지는 공화국인지 정의가 안되는 수준이다. 정부가 벌인 일을 정부는 책임지지 않는 대한민국 고유의 거버넌스가 여전히 날카롭게 주입되고 있다. 오늘날 한국 정부가 하는 일은 사적 기업의 경영보다 휠씬 악랄하다. 그들의 고유한 지혜이며 국민이 위임한 권리인 규제와 중재를 공평하게 적용하지 못하고 한쪽의 일방적인 해체만을 염두에 두고 공권력을 위시한 작전만을 벌인다. 온갖 물자와 인력을 동원한 국가의 작전에서 노동자가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다. 설령 이러한 물리적 기능이 작동되지 않더라도 법률적으로 기업을 청산할 수 있다. 역시 또 다른 외자유치를 통해서 말이다. 기업이나 사모펀드가 하는 일을 정부가 앞잡이로 한다.

쌍용자동차 노동자 뿐만 아니라 그 나이의 대다수 노동자와 도시근로자들이 회사를 떠나게 되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삶 자체가 전속력으로 파탄에 이른다. 기업은 노동자를 그들 삶에 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업에 복무하는 기능으로 파악한지 오래다. 한술 더 떠 사회 구조는 오십이 넘으면 노동력을 인정하지 않고 어떠한 안전망도 제공하지 않는다. 게다가 서로 공동체를 이루고 연민하지도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쌍용자동차의 노노 갈등을 목격하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이 당한 일이라면 나에게도 일어 날 것이란 순환고리가 처참하게 깨져 산산이 흩어져 버린 것이다. 자본의 선의를 바라고 행동한 비해고 노동자들은 또 얼마나 불안할 것이며 같은 노동자를 내리치던 해고 노동자들의 눈은 얼마나 떨렸을까 말이다. 이런 사태를 방관하며 방패를 풀었다 막았다 를 반복하는 정부의 심장은 얼마나 악질적인가.

지금 이 시간에도 해고 노동자들은 세상으로 부터 스스로를 봉쇄하고 농성 중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의 바램에도 불구하고 폭력이 한차례 휘몰아 쳤다. 비해고 노동자들에게 양심을 탓할 수는 있어도 그들의 삶을 어느 누구라도 멋대로 재단할 수는 없다. 그들에게도 해고 노동자와 같은 절박함이 있다. 금번의 물리적 충돌은 분명 사측에 의한 동원일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쌍용자동차의 사측이란 법정관리 중인 정부라는 끔찍한 사실관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정부가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물리적 정서적 대립으로 인해 이들이 다시 '함께 일할' 수 있을지, 그리하여 회사도 살리고 그들 스스로도 살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노동자들끼리 내일의 도모를 스스로 내동댕이 치게 만든 이명박정부의 듣도 보도 못한 고도의 노동 전략이 전술로 확인된 것이다. 이것은 설령 기적적인 타협이 일어 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상적일지 알 수 없게 만들고 그로 인해 다시 죽도록 일해야 하는 노동 관성을 되살려 회사의 채산성이 확보되면 다시 매각하는 과정을 거치려는 모종의 도발이 짙은 냄새를 풍긴다.

지금 이 순간 공장을 봉쇄했지만 인터넷과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주시하고 있을 해고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 불안과 자괴에 소름 돋을 비해고 노동자들에게 우리의 관심과 사회적 압력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들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그들이 오늘을 사는 것은 숨과 물이 아니라 감옥 밖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과 사회적 관심 뿐이다. 그들이 살면 비해고 노동자도 회사도 산다. 그들이 살면 점진적으로 우리도 산다. 그 같은 일이 우리에게 그리고 회사에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09/06/29 18:33 2009/06/29 18:33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