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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07 인용, 8월테제 by DrunkenSTAR

인용, 8월테제

2009/07/07 21:00 / 생각

"박헌영은 1945년 8월20일, 지하에서 활동해온 콤그룹의 잠정적 정치 노선을 정리하고 일제의 패망 후 세계의 정세와 해방정국에 있어서 좌익 세력의 노선을 정리하여 8월테제를 발표한다. 미국을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로 보고 쏘련의 부상을 의미 있게 규정한다. 당시의 정세를 부르주아민주주의 단계로 분석한 박헌영은 토지몰수, 무상분배를 통한 농민, 노동자의 결집으로 공산주의 혁명의 다음 단계인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완수하자고 주장한다. 남한에서 여운형, 김구, 이승만, 박헌영 등이 서로의 헤게모니를 위해 제각자의 노선을 대중에게 역설하는 동안 미군정은 지배권력을 어떻게 이양해야 하는지 우왕좌왕한다. 이에 반해 북한에 진주한 쏘련은 조선의 운명은 조선인의 손으로 라며 우호적인 수사를 동원하고 이에 김일성은 귀국 연설에서 모든 힘을 새 민주조선 건설을 위하여 라는 '국가건설' 의 과제적 희망을 인민들에게 전파시킨다. 그에 반해 당파적 건국준비위원회의 파탄을 목도할 수 밖에 없던 남한은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해방 후 혼란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물론, 표면상으로 쏘련은 남한에 진주한 미군처럼 군정을 수립하지도 직접적인 정책 관여도 하지 않았지만 북한을 배후에서 조정하는 고도의 정치기술을 발휘 했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남한보다 북한이 먼저 구체제 청산, 사회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아무리 뒤져 봐도 박헌영의 8월테제에 없는 것은 '권력' 이다. 박헌영은 해방 후의 상황을 부르주아민주주의 단계로 보았지만 부르주아지와 협력을 거부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영도권을 쟁취하기 위한 대중의 전취, 인민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반드시 권력을 잡아야 하는 욕구가 매우 절제되어 있다. 다만, 장안파에 대한 위기의식만이 짙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보수나 진보나 대의제민주주의 체제하의 정치적 정당의 목적에서 정권 장악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2009/07/07 21:00 2009/07/07 21:00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