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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16 평가와 열정에 관하여 by DrunkenSTAR

평가와 열정에 관하여

2009/07/16 18:48 /

회사에서는 누군가가 자기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기 마련이다. 회사는 그것을 정중하게 '평가' 라고 한다. 평가는 곧잘 이런 식으로 부연된다. "측정하지 않으면 관리되지 않는다.", 또는 "측정하지 않으면 행해지지도 고쳐지지도 않는다." 경영학의 아버지라는 피터드러커와 세계적인 전력기기 회사인 ABB 의 퍼시 바네빅 회장의 말을 엄숙하게 빌려 말한다. 이것을 국내 기업에서는 KPI 라는 툴로 이해하고 적용한다. 직급, 팀 단위별로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사안별, 기간별로 달성 여부를 모니터링 하는 것이다. 대기업의 입장에서는 애면글면 어떻게든 사용하려는 입장인데 중소기업에서는 차라리 날 잡아 잡수세요 다. 관리자도 실무자고 경영진이 영업직인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처럼 간지 좀 세우겠다고 KPI 같은 평가툴을 도입했다가는 한해 농사 평가도 못해보고 말아 먹기 쉽상이다. 어줍잖이 지식산업 좀 한다는 기업에 있어서는 측정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가 있냐는 둥 에둘러 검토조차 복잡하다는 입장이다. 이렇다 보니 정성적 판단이 각 개인의 능력을 가늠하는 중대한? 잣대가 된다.

여의도에만 정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정성적 판단이 더 많은 중소기업에도 만만치 않은 정치가 있다. 줄을 선다는 개념 보다는 평가할 시기가 오면 관리자들은 1년간 가장 인상 깊었던 추억을 떠올린다. 그것이 프로젝트 일 수도 있고 술자리의 난장일 수도 있으며 클라이언트의 지나가는 말 일 수도 있다. 그렇다보니 피평가자는 내내 관리자의 추억에 남기 위해 노력한다. 최근의 불경기, 이직 시장도 좋지 않은 때에는 정치? 행보가 다소 디테일해지고 관리자들도 다른 관리자들과 이런 저런 평판을 들으려고 분주히 움직인다. 이렇게 한바퀴 돌게 되면 관리자들 사이에서도 응당 편가르기가 시작된다. 왜 저놈은 내가 이뻐하는 애를 싫어하지, 어? 내가 미워하는 앤데 임원이 좋아하네, 따위의 각종 정서를 짜집기 하게 된다. 이런 것들을 세련된 문장으로 만들고 거기에 점수를 기입한다. 물론, 각 항목마다 가중치가 다른데 이 가중치의 근거는 직관이다. 정서와 직관이 합쳐져서 평가 라는 엄숙한 말로 승화된다.

누가봐도 이성적이지도 않고 기업의 오래된 관습인 비인간적인 시스템도 적용되지 않은 거짓말 투성이로 개인이 평가된다. 이 평가를 통해 당장은 관계가 좋아진다. 좋아 하는 기준으로 좋아 했던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가 되었으니 궁합도 잘 맞는다. 이것을 또 엄숙하게도 '시너지' 라 명명하면 할말이 없어진다. 관리자와 보기 좋은 관계를 맺어 두지 못한 이른바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뻔하디 뻔한 길을 걷게 된다. 인사라는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들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과 일하겠다는 의지는 경외롭기까지 하다. 이런 경외로움이 지속적으로 조직에 투여 되면 자신을 스스로 리드 하고 소신에 관계된 자유로운 열정을 가진 개인은 차츰 사라지기 마련이다. 이런 식으로 일단 조직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기 시작하면 금화에서 구리를 빼고 다시 재련하는 매카니즘만으로 되돌릴 수가 없다. 묘하게도 회사에서 정성적 평가에 의존하여 조직을 관리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은 평가를 시스템적이고 디테일하게 할 때 일어나는 현상과 비슷하다. 평가가 시스템적일수록, 또는 정치가 난무하는 평가일수록 리더만 득실대는 조직이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회사나 조직은 걸핏하면 리더쉽을 얘기하지만 리더쉽이 득달거리는 조직은 전진하지 못한다.

회사는 개인에게 스스로 열정을 갖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문제는 대기업에서 수많은 사람을 관리 라는 학문적 기능으로 묶기 위해 신입사원연수, 선배에 대한 복종, 시스템의 이해, 시스템에 대한 복종, 시스템의 운용 의 과정을 거쳐 리더쉽과 시너지와 평가를 가르친다고 하지만 조직에서 떨어져 나오게 되면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는 '영혼의 노숙자' 가 된다는 점이다. 이른바 지식산업 좀 한다는 벤쳐, 중소기업에서도 이러한 시스템을 극구 도입하길 원하는데 개인을 이성적인 인간으로, 열정을 스스로 터득할 수 있는 법을 가르치는 수완을 발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이것이 벤쳐나 중소기업이 개인에게 줄 수 있는 퇴직금이나 마찬가지다. 리더쉽이나 마케팅 전문 강사의 강의를 쫒도록 하지 않고 인문학 선생님, 철학, 실물경제가 아닌 거시경제학의 선생님들의 말씀을 듣는 기회를 제공하면 안되는 것일까? 그래도 평가가 필요 하다면 예술사조 강의를 듣고 다음날 디자이너를 몽땅 미술관에 데려가 작품에 대해 토의하고 그때의 태도와 자세를 토대로 평가를 하는 방법은 왜 벤쳐, 중소기업에서 해선 안되는 터부처럼 얘기되는 것인지 이해를 못하겠다.

2009/07/16 18:48 2009/07/16 18:48
DrunkenSTAR 이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