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시인과 뛰어난 산문가가 원래는 한 몸이라는 것을 행복하게 증거한다. 이성복의 산문을 읽다보면, 틀림없이 '산문'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시' 속으로 들어가 있기 일쑤다.]
시인 이성복의 산문집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했는가' 에 실린 소설가 이인성의 서평이다. 위와 같은 서평의 느낌을 시인 곽재구의 포구기행과 예술기행집에서 독후감한 적이 있다. 시인이 관찰하는 이 세계의 사물, 그 사물들은 나도 익히 봐왔고 만져봤던 것들인데도 그대로 시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눈과 가슴의 가난함을 탓하고도 남음이다.
샤갈전에 즈음해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이라는 시인 김춘수의 시를 찾아 읽어 보고 포스트를 남긴 적이 있다. 꽃과 릴케, 부다페스트와 샤갈을 노래 했던 시인 김춘수 선생이 지난달 타계했다는 소식에 나는, 꽃이라는 시인의 시를 학창시절 어느 벤치에서, 어느 여학생에게 낭송해준 이후로 다시 읽어 보게 되었다. 어느새 꽃의 시는 낱낱이 기억에서 사라져서 그때 그 감흥이 어지간해선 살아나지 않는 거름의 나이가 되어 버린 듯, 묵묵히 읽어 갈 수 밖에 없었는데, 도리어 세월의 생김새에 불편한 상채기만 딱지 져 흉이 되었는지,
나는 꽃의 시 첫 노래에서 여학생의 치마속으로 불쾌한 손을 집어 넣는 듯한 섹츄얼리티를 느끼고 말았다.
다음 구절에서 나는 이내 고개를 휘젓고 냉큼 담배라고 걸어 피우지 않고는 이 상상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이데거의 실존철학, 미술학적 의미 등으로 고상하게 해석되는 시 앞에서 불경스러운 나의 새로운 미적(?) 해석은 혼자 피우는 담배 내내 난감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꽃의 해석이 차라리 꽃이 되기 전, 꽃이 된 후, 그리고 사라진 꽃에 대한 전시상황의 어머니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으로 마무리를 하려 했다. 이를테면, 전장에 아들과 남편을 내보내는 어머니가 불러보고픈 이름으로 그리고 그들을 꽃으로, 명분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전장에서 산화한 이름으로, 어머니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으로... 음미하는 것은 어떤가?
산화라는 말이 좀 걸리긴 한다. 산화는 본래 의미의 散華, 부처님께 꽃을 뿌려 공양하는 의식이라는 뜻에서, 散花 의 의미로 전장에서 전사함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변질된 散花는 일제시대 일본인이 만든 말로 '사쿠라 꽃처럼 지다' 라는 뜻으로, 황국군대에 목숨을 바친 황국민이란 뜻으로 혹세무민한 말이다. 어쩐지 내 세월이 비춘 생각이 여러면에서 껄끄럽다.
시인이 되지 못해 안달 복달이 났었던 소년이 이렇게 궁상 맞고 궁색한 어른이 되어, 추모를 해도 실례가 안될지 모를 지경이지만,
시인 김춘수 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1922년 11월25일 ~ 2004년 11월 29일]
시인 이성복의 산문집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했는가' 에 실린 소설가 이인성의 서평이다. 위와 같은 서평의 느낌을 시인 곽재구의 포구기행과 예술기행집에서 독후감한 적이 있다. 시인이 관찰하는 이 세계의 사물, 그 사물들은 나도 익히 봐왔고 만져봤던 것들인데도 그대로 시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눈과 가슴의 가난함을 탓하고도 남음이다.
샤갈전에 즈음해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이라는 시인 김춘수의 시를 찾아 읽어 보고 포스트를 남긴 적이 있다. 꽃과 릴케, 부다페스트와 샤갈을 노래 했던 시인 김춘수 선생이 지난달 타계했다는 소식에 나는, 꽃이라는 시인의 시를 학창시절 어느 벤치에서, 어느 여학생에게 낭송해준 이후로 다시 읽어 보게 되었다. 어느새 꽃의 시는 낱낱이 기억에서 사라져서 그때 그 감흥이 어지간해선 살아나지 않는 거름의 나이가 되어 버린 듯, 묵묵히 읽어 갈 수 밖에 없었는데, 도리어 세월의 생김새에 불편한 상채기만 딱지 져 흉이 되었는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꽃의 시 첫 노래에서 여학생의 치마속으로 불쾌한 손을 집어 넣는 듯한 섹츄얼리티를 느끼고 말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다음 구절에서 나는 이내 고개를 휘젓고 냉큼 담배라고 걸어 피우지 않고는 이 상상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이데거의 실존철학, 미술학적 의미 등으로 고상하게 해석되는 시 앞에서 불경스러운 나의 새로운 미적(?) 해석은 혼자 피우는 담배 내내 난감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꽃의 해석이 차라리 꽃이 되기 전, 꽃이 된 후, 그리고 사라진 꽃에 대한 전시상황의 어머니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으로 마무리를 하려 했다. 이를테면, 전장에 아들과 남편을 내보내는 어머니가 불러보고픈 이름으로 그리고 그들을 꽃으로, 명분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전장에서 산화한 이름으로, 어머니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으로... 음미하는 것은 어떤가?
산화라는 말이 좀 걸리긴 한다. 산화는 본래 의미의 散華, 부처님께 꽃을 뿌려 공양하는 의식이라는 뜻에서, 散花 의 의미로 전장에서 전사함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변질된 散花는 일제시대 일본인이 만든 말로 '사쿠라 꽃처럼 지다' 라는 뜻으로, 황국군대에 목숨을 바친 황국민이란 뜻으로 혹세무민한 말이다. 어쩐지 내 세월이 비춘 생각이 여러면에서 껄끄럽다.
시인이 되지 못해 안달 복달이 났었던 소년이 이렇게 궁상 맞고 궁색한 어른이 되어, 추모를 해도 실례가 안될지 모를 지경이지만,
시인 김춘수 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1922년 11월25일 ~ 2004년 11월 29일]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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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ap 2004/12/03 12:21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어렸을적 한동안..
나에게 타인과의 관계라는 존재에 대한 의미를 가르쳐 주었던 '꽃'의 시인이 돌아가셨군요.
이시를 읽다보면 어린왕자의 장미를 떠올리곤 했었는데..
said the littleprince.
"There is a flower . . . I think that she has tamed me . . ."
"It is possible," said the fox.
"On the Earth one sees all sorts of things."
"Oh, but this is not on the Earth!" said the littleprince...
Jack 2004/12/03 13:26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그러네요, 어린왕자와 장미...
시인이 그 소설을 보고 영감을 받았을 수도 있겠네요..